고구려 미천왕(300-331):활발하게 대외팽창을 꾀하였다.
-서안평을 점령
-낙랑군과 대방군을 완전히 몰아 낸 압록강중류지역을 벗어나 남족으로 진출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
고국원왕(331-37)
-전연의 침입을 받아 궁궐이 불타고, 미천왕의 시신을 도굴당하였으며, 왕의 생모와 5만 명이 포로로 잡혀가는 국난을 당하였다.
-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을 받아 평양성이 함락되고 전사하였다.
소수림왕(371-384)
-불교의 공인, 태학의 설립, 율령의 반포 등을 통해 지방에 산재한 부족세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 중앙집권국가로의 체제를 강화하려 하였다.
광개토대왕(391-413)
-영토의 확장
.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경하여 패수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한강 이북까지 진출
.후연을 격퇴하여 요동지역과 만주의 대부분을 차지
.동예 복속
-왜의 격퇴
.신라와 왜,가야 사이의 세력경쟁에 개입하여 신라와 가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함으로써 한반도 남부까지 영향
.가야의 중심이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이동하는 계기
-영락이라는 최초 연호 사용:정치적 주체성과 왕권의 강화를 의미
-불교의 진흥
장수왕(413-491)
-광개토대왕릉비 건립
-다면외교추진
.중국의 남조 및 북조와 각각 교류하면서 대립하고 있던 두 세력을 조종하는 외교관계를 써서 중국을 견제
-남진정책 추진
.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하고 안학궁을 세웠다.
.신라 눌지왕과 백제 비유왕이 나제동맹 체결
.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국서를 보내어 지원을 요청하는 계기가 되었다.
-영토의 확장
.백제 수도 한성 함락
.한강 전 지역을 포함하여 죽령일대로부터 남양만을 연결하는 선까지 넓혔다.
.충주 중원고구려비
-경당 설립
.평양천도이후 설립된 사학이다.
.청소년들에게 한학과 무술을 가르쳤다
-포용정책추친:의탁해 온 북연의 왕을 영토 내에 머무르게 하고 제후로 대하였다.
문자왕(491-519) : 부여를 복속시켜 고구려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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